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퓨처플레이가 보는 10년 뒤
퓨처플레이 홈페이지 : https://futureplay.co/
얼마나 많은 창업자를 만나왔나?
매주 30~40개의 콜드메일이 들어온다. 모두 읽어본다. 2020년에, 그 한 해동안 얼마나 많은 스타트업을 퓨처플레이에서 만났는지 세어봤었는데, 그때 790여개더라. 당시 투자한 포트폴리오가 36개다. 지난해에는 세어보지 않았지만, 투자 포트폴리오사가 49개로 늘었다. 퓨처플레이가 만난 스타트업의 수는 더 많이 늘었을 거다. 액셀러레이터를 한 이후로 생각해보면 한 만명은 만나지 않았을까?
그렇게 많은 스타트업을 봤는데, 이제는 창업자를 보면 성공할 것 같은지 아닌지 딱 느낌이 오나?
질문에 어폐가 있다. ‘느낌’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건 느낌이 아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빅데이터로 학습된 반응일 거다. 어떤 패턴을 가진 창업자가 성공을 하더라는 통계치가 저한테 있어서 반응이 오는 거지, 느낌 같은 게 아니다.
그 데이터에 따르면, 성공할 것 같은 창업자는 어떠한 사람인가?
이것도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두 가지 이유다. 성공하는 창업자의 특징이 여럿이기도 하고, 또 말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설명하려고 노력해보자면, ‘퍼스널리티’가 되게 중요한 것 같다. 많은 이들이 간과하지만, 창업은 일종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라이프 스타일이라면?
내가 A라는 방법으로 살면서, 일을 할 때만 B라는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가 가진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통째로 써도 될까말까 한 일이기 때문에, 그냥 “그 사람이 그 방식으로 살아야지” 성공할 수 있는 거다. 그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이 이 업을 이루는데 적합하다면, 당연히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열정이나 업무 집중도 같은 것을 말하는 걸까?
전혀 아니다. 명품 커머스를 하는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이 대체 왜 명품을 사는지, 어떤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이 비싼 물건을 사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이 없이 명품 커머스 업을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런 통찰은 단순히 책을 읽는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내가 명품을 많이 사봤든, 주변에서 많이 사든, 또는 명품을 파는 점포에서 일을 해봤든 간에 이 사람의 인생 경험에서 통찰이 나오는 거다. 이 사람이 20대 초반 창업자라고 해도, 그 20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앞으로 20년 동안 이 사람이 창업가로서 어떻게 살 지를 결정하는 거다. 그 삶의 궤적을 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경험의 궤적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굉장히 많이 해야 한다. 질문을 잘하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도 질문을 잘 하는 게 중요하다. 질문을 잘 하려면 맥락을 잘 이해해야 하고 적확한 언어를 쓰는게 굉장히 중요하다. 내 질문을 상대편이 이해해야 그에 대한 올바른 답을 줄 수 있고, 그게 내 판단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정말 좋은 창업가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얼마나 정리된 단어와 문장으로 질문과 대답을 하는지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액셀러레이터를 정의하는 중요한 개념이 ‘비저너리’라는 말로 들린다
퓨처플레이가 정의하는 액셀러레이터는 그렇다는 말이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 비전이 없는 상태에서는 어떤 회사에 투자할지 결정할 수 없고, 또 투자한 회사에 어떠한 방식으로 가는게 좋을지 조언하기도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액셀러레이터는 응원단이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스포츠에서 코치의 역할과 같다. 코치의 머릿속에는 이상적인 선수상이 있는데, 지금의 선수 상태를 그 이상향까지 끌어올릴 수 있도록 차이를 채워주기 위해 계속해 미션을 주는 역할이 액셀러레이터다. “10년 뒤의 세상이 이렇게 변할 거니까 능동적으로 그렇게 변하셔야 10년 뒤에 왕좌에 올라갈 수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대략 지금 투자하는 곳들이 10년 후에 세상을 바꿔놓을 거라고 생각하고 투자를 하는 건가?
그런 믿음이 없으면 투자를 하지 못한다.
10년 후에는 세상이 어떻게 바뀔 거라고 보나?
사회 문화적인 변화와 테크놀로지 변화의 교차점을 항상 볼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인구 구성의 변화와 부의 변화를 굉장히 눈여겨 보고 있다. 모든 선진국에서 젊은 세대보다 노인 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트렌드가 커진다. 부 역시 노인 계층에 편중되고 있다. 미국으로 치면 산업사회를 거친 베이미부머 세대의 가처분 소득이 엑스 세대의 두 배다. 밀레니얼은 엑스세대의 절반, 제너레이션Z(Z세대)는 밀레니얼의 절반 정도로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었다.
젊은 세대가 점점 가난해진다
Z세대 입장에서는 그냥 돈이 없는 거다. 그런데 이게 여러 소비패턴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서, 젊은 세대가 가질 수 있는 집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교외에서 살 수밖에 없다. 한국으로 치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그간 가장 진보적이고 젊었던 서울이 덜 진보적 선택을 했다. 가장 진보적 선택을 한 곳은 경기도인데, 평균 연령의 변화 때문이라고 본다.
또 하나는 기술의 진보다. 인간을 대체할 수준으로 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로 치면 인공지능(AI)이고, 하드웨어로 치면 로보틱스다. 로보틱스와 AI, 인구 구성의 변화의 교집합에는 뭐가 있을까? 앞으로 10년, 그러니까 2022년부터 2032년까지를 좌우할 가장 큰 변화로 보고 있는 것이 직업의 변화다.
직업의 변화는 어떻게 일어날까?
어떤 직업은 사라질 거다. 예를 들어 택시 운전은 자율주행이 대체할 거다. 어떤 직업은 생겨난다. 몇년전만 해도 사람들이 뭔지 몰랐던 ‘프로덕트 오너(PO)’ 같은 친구들은, 지금 금값이다. 모든 사람들의 직업에 있어서 변화가 일어날텐데, 능동적 대응을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성인 교육 시장이 엄청나게 커질 거라고 보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하는 것은 내가 하기 싫은 것, 잘 하지 못하는 것을 배울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울트라 퍼스널라이제이션’이 일어날 거라고 보고 있다. 이 사람이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게 시작될 수밖에 없는데, 놀랍게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종류의 서비스나 테크놀로지가 아직 그렇게 많이 시장에 나오지 않았다. 비과학적인 MBTI를 사람들이 신봉하는 이유는 내가 누군지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합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진다는 것은 엄청난 경쟁력이다.
지금도 부가 많이 편중되어 있지 않나. 10년 후의 미래에는 부의 편중이 더 강화될 거라고 보나?
강화시킬지 완화시킬지는 모두의 선택이라고 본다. 땀 흘려 일한 시간이나 노동에 비례한 소득도 있겠지만,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을 적절히 투자해 얻게 되는 자본소득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자본 수익이 노동 수익을 뛰어넘으면서 자본소득을 계속 만들어내는 사람은 천문학적인 부자가 되고 노동소득에 머무르는 사람은 가난할 수밖에 없다. 이게 지금의 양극화를 만들었다. 이걸 되돌릴 방법은 많다.
어떤 방법이 있나?
기초소득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 재원은 천문학적인 세금을 물려서 만들 수 있다. 로봇세와 같은것이 그 예다. 사람이 노동을 하면 세금을 떼듯, 로봇이 일을 하면 여기에도 세금을 물려야 한다. 플랫폼 회사에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에만 맡겨놓으면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 밖에 없다. 그 차이를 인위적인 사회 시스템으로 줄이려는 움직임이 로봇세와 같은 것이다.
10년 뒤 미래를 예측해 보면 공학적으로는 자본주의가 빈부 격차를 더 크게 만들겠지만, 사회적으로는 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으로 나뉠 것 같다. 미국과 유럽, 한국의 대응이 다 다를 거다.
지휘자를 빼고는 대부분 기계로 대체되는 사회가 온다는 이야기인데
그래서 이런 예측도 많이 있다. 울트라 수퍼 엘리트를 제외하면 모두 놀고 먹을 거라고. 사람들이 잘 못느끼는데 이미 우리는 놀고 먹고 있다. 농업이나 축산 등의 영역을 보면 이미 인간의 비중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음식을 먹는 데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지 않나?
냉정하게 말하면, 인간이 동물로서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은 이미 기계로 거의 대체됐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사치품은, 인간의 생존에는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이걸 이해 못하면, 지금의 메타버스나 NFT가 왜 필요한지를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유희의 동물이 된지 이미 오래다.
사회적으로 그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서 타다 같은 케이스가 그랬다. 변화하는 방향에 대해 상대를 설득할 논거가 필요하지 않나
맞다. 그 지점에서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가 오고 있다고 본다. 목소리가 큰 사람, 자극적인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결국 정권을 잡는다. 민주주의의 한계에 도달한 어떤 증거라고 본다. 합리적 의사결정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타다를 용인할 것인가, 불법화할 것인가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신념이 아니라 데이터였다. 국민 복리가 얼마나 올라갈지 여부를 통계적, 과학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아무도 그렇게 접근하고 있지 않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게 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https://byline.network/2022/04/22-182/